/ 세계와 조선 - 력사적사실
또 하나의 반인륜악법 《징병제령》
  1930년대에 대륙침략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1940년대에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일제는 극심한 병력고갈을 해소하기 위하여 조선사람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닥치는대로 끌어갔습니다.
  1942년 5월 일제는 내각회의에서 조선청장년들을 침략전쟁터에로 모조리 내몰기 위한 《징병제》의 실시를 결정하고 그 준비로서 10월 《조선총독부》로 하여금 《조선청년특별련성령》을 발표하게 하였습니다.
  《조선청년특별련성령》은 1938년 2월에 공포된 《조선인륙군특별지원병령》을 보다 더 개악한 법령으로서 《징병제》의 실시를 앞두고 수많은 조선의 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강제로 주어 전쟁대포밥으로 써먹을것을 목적한것이였습니다.
  한편 태평양전쟁에서 해전이 적지 않은데로부터 조선청년들을 륙군뿐 아니라 해군으로까지 끌어다가 침략전쟁의 대포밥으로 써먹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1942년 7월 《해군특별지원병령》의 실시를 공포하고 《조선총독부해군지원자훈련소》를 여러 해안지대에 설치한 후 조선청년들을 끌어다가 훈련시키였습니다.
  이러한 배경하에 일제는 1943년 8월 《징병제령》을 조작공포하고 모든 《징병》대상자들에 대하여 《징병제》를 강압실시하였습니다.


징병호출과 징병령장

 
《지원병》입소식


《조선인륙군지원병훈련소》

  일제는 헌병과 경찰들을 동원하여 《징병》에 해당되는 년령대상자들을 임의의 시각에 끌어가는 강도적인 랍치방법을 적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징병》에 응하지 않는 조선청년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면서 그들을 체포, 구금, 탄압, 학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침략전쟁마당에 끌려간 조선청년들은 온갖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가장 어렵고 고된 일만이 강요되였으며 전투때에는 앞장에서 총알받이로 내몰리웠습니다. 조선청년들이 간혹 죽음을 면하고 부상을 당하면 치료해준것이 아니라 그대로 놓아두어 그들이 무참하게 생명을 잃게 하였습니다.
  일제는 전투때만이 아니라 일상시기에도 조선사람들을 학대하고 서슴없이 죽이는 등 몸서리치는 만행을 꺼리낌없이 감행하였습니다.
  일본군대 《공병 4278부대》에 끌려갔던 리문병은 《일제침략군은 장교는 말할것도 없고 사병들모두가 일본말을 잘 모르는 조선청년들이 저들의 구령을 제때에 따르지 못하면 〈센징〉이라고 모독하면서 발길로 걷어차고 훈련이 끝난 다음에는 조선사람만 따로 모여놓고 기합을 들이대군 하였다.일본군의 고문과 악행을 참다 못해 자살하는 현상들이 많았다.》고 말하였습니다.
  1945년 5월 한 륙군부대에 징병으로 끌려갔던 리종주는 그때 한 청년이 장질부사에 걸려 몹시 앓고있었는데 장교가 고열에 정신을 잃고있는 그를 참나무격검채로 사정없이 내리치고 일어설것을 강요하였다,보다 못해 내가 달려가 장질부사라고 거듭 말하자 놈은 청년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실로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 랍치, 강제징발하여 징병으로 내몰아 무참히 죽게 만든 일제의 죄악은 온 세계가 특대형반인륜범죄로 락인하며 치를 떠는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못지 않은 또 하나의 반인륜범죄인것입니다.
  우리 인민은 일본의 과거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반드시 결산하고야말것입니다.